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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분양계약해제, 분양대금반환] 건축물분양법 개정, 수분양자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일 때 2025-04-21 10:56
카테고리대외활동
작성자 Level 10

저는 수많은 수분양자들을 대리하여 다양한 종류의 소송을 수행하고 있는 16년차 변호사입니다. 분양관련소송을 수행하다보면 의뢰인으로 오시는 수분양자들의 억울한 사연을 제일 많이 듣게 되지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정과 법정외에서 만나게 되는 시행사, 건설사, 신탁사, 금융기관 담당자들의 이야기도 못지 않게 듣게 됩니다.

이분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우리나라 분양제도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고 생각하게 되는데, 생각의 끝에는 항상 우리나라 건축물분양법에 대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세상은 시시각각 변해가는데, 세상의 변화와 그 변화에 적응해 살아가는 국민들의 요구는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수분양자들의 입장에서 시급히 정비했으면 하는 부분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2015년경부터 2022년경까지 부동산 시장이 뜨거웠을 때가 있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부동산 가격이 치솟았고, 부동산을 사지 않는 사람은 '벼락거지'로 취급되던 시절이었습니다.

시절이 그러다보니 사람들의 맘을 급하게 했고, 실수요자들은 소위 '영끌'까지 하여 내 집 마련을 하였습니다. 아파트, 오피스텔 등 주거용부동산에 대한 대출규제, 세제규제가 생기면서, 부동산투자자들은 비주거용 부동산인 생활형숙박시설, 지식산업센터, 상가(근린생활시설), 오피스를 찾아 분양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기억하기에 2022년경부터 부동산 시장의 거품이 빠지기 시작했고, 지금은 차갑게 식어버린 각종 부동산을 두고 수분양자, 대주단, 신탁사, 건설사, 시행사 모두 시름시름 앓고 있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의 분양시스템은 '선분양'시스템입니다. 건물을 짓기도 전에 건물을 분양하는 것이죠.

'시행사'라고 불리는 분양사업자는 전체 사업자금의 5%에도 못 미치는 자기자본을 투입한 뒤, 나머지 95%가 넘는 사업자금은 금융기관들로부터 빌리는 PF대출자금과 수분양자들로부터 받는 분양대금으로 충당합니다. PF대출자금과 계약금, 중도금이 들어오면, 시행사는 자기가 투입한 그 돈마저 이런저런 방법으로 회수해 갈 수 있으니, 사실상 '남의 돈'으로 사업이 이루어지는 시스템으로 볼 수 있습니다.

'남의 돈'으로 사업을 하는 시행사는 언제든지 다른 곳으로 자금을 유용할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건축물분양법에서는 선분양을 할 때, 분양보증을 받거나 신탁계약을 체결하여 '신탁사'에게 부동산(토지, 건물)과 분양대금의 관리를 맡기도록 하고 있습니다.

아파트가 아닌 비(非)아파트 분양시장은 대부분 신탁사가 분양대금과 부동산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신탁사는 국가에서 관리, 감독을 받는 금융회사입니다. 그러다보니, 많은 현장에서 신탁사는 맡은 바 임무대로 부동산(대지 및 신축건물), 분양대금 관리를 잘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현장에서는 분양대금 관리를 잘못 하여, 어느 현장에서는 시행사에게 속아 분양대금을 잘못 지출해 주는 일들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분양대금 관리를 잘못 하게 되면, 공사대금 등 사업자금이 부족하게 되어 결국에는 공사가 중단되는 사고가 발생합니다. 제가 소송을 수행하는 현장 중 몇 곳도 실제 그러한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그리고 공사를 시작하였지만 당초 예상과 달리 미분양율이 높아 공사가 중단된 현장도 있습니다. '책임준공'을 약속했던 시공사, 책임준공 관리형 개발신탁사가 있지만, 이들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공사가 중단되는 것이죠.

이렇게 '공사중단'이 발생하고 그 기간이 장기화되면, 분양관계자 모두가 고통을 받습니다. PF대출자금을 빌려준 금융기관은 이자를 받지 못하고, 건설사는 밀린 공사대금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할 때, 법제도상 가장 답답하고 큰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수분양자들입니다.

수분양자들은 공사가 정상화될 때까지 기다리면서 중도금대출은행이 요구하는 이자만 하염없이 납부해야 합니다. 마냥 대주단과 건설사, 신탁사의 입만 쳐다볼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됩니다.

PF대주단, 건설사는 부동산 및 분양대금을 관리하는 신탁사와 신탁계약, 대리사무계약, 사업약정 등의 이름으로 각종 계약을 체결합니다. 그 계약들에는 공사중단이 되었을 때, PF대주단과 건설사의 결정으로 분양사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여러가지 법적장치들이 있고, 자신들에 유리하게 '사업정산'을 할 수 있는 권리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수분양자들에게는 공사중단이 장기화되었을 때 분양사업에 개입하여 어떠한 방법으로 '공사를 이행할 것'인지를 결정하거나 '정산'을 요구하여 분양대금을 돌려달라고 할 권한이 없습니다.

물론 분양계약서에는 시행사나 신탁사에게 계약을 해제하고 분양대금을 돌려달라고 할 수 있다 기재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시행사는 원래 자기 돈 한 푼 없는 '깡통'이어서 시행사는 분양대금을 돌려줄 자력이 없습니다. 그리고 신탁사는 '시행사, 건설사의 동의' 및 '대주단의 동의'가 없으면 분양대금을 돌려줄 수 없다고 합니다(주로 분양관리신탁의 경우). 아니면 현재 신탁계좌에 돈이 없으니 기다리라고 합니다(주로 관리형 토지신탁의 경우).

분양사업제도에 있어 수분양자는 철저히 외면받고 있습니다. 분양사업의 재원이 되는 '남의 돈' 중 금융기관이 빌려주는 PF대출금은 40% 미만으로 알고 있습니다. 나머지 60% 이상은 수분양자들의 분양대금입니다. 돈은 더 많이 내는데, 공사가 중단되었을 때 어떤 방식으로 공사를 이행할지에 대해 의견제시도 하지 못하고, 40% 미만의 돈을 낸 금융기관과 건설사, 신탁사의 입만 쳐다봐야 한다는 현실이 아이러니 같습니다.

언론에서는 지금이 '부동산PF부실 위기'라고 합니다. 하지만 건설사, 신탁사의 PF부실이 터지면 수분양자도 같이 위험에 처합니다.

지금까지 만들어진 정책과 제도는 수분양자의 상대방인 건설사, 시행사, 신탁사, 대주단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측면이 강하다 생각됩니다. 부동산 시장은 건강한 소비자가 있어야 성장할 수 있고, 건강한 소비자가 합리적인 선택을 통해 부동산 시장을 견조하게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소비자들이 다 죽어가는데, 공급자들의 입장만 대변하는 법제도는 이제 개선되어야 할 때가 아닐까 합니다.

격동의 시기, 건축물분양법도 시대에 맞춰 개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부디 수분양자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