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인즉 슨, 신탁사는 '시행사에게 분양계약의 매도인 명의만 빌려주었을 뿐, 실제 사업은 시행사가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니 수분양자가 분양계약을 해제해서 신탁사에게 분양대금을 돌려 달라고 하더라도, 신탁사는 관리하는 분양수입금관리계좌에 돈이 있을 때에만 돈을 주겠다'는 겁니다.
이른바 신탁사의 '책임한정특약'과 관련한 다툼입니다.
신탁사의 주장대로, 수분양자가 분양계약해제 및 분양대금반환청구 소송에서 승소하더라도 '신탁재산이 남아 있을 때에만' 신탁사로부터 분양대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면, 오랜 시간과 갖은 노력을 들여서 받은 판결문이 자칫 한낱 종이쪼가리가 될 수 있는 겁니다.
신탁사가 '분양수입금계좌에 돈이 없네'라며 '배째고 등따라' 식으로 해버릴 수 있는 근거조항이 되는 건데, 그렇게 되면 수분양자들 입장에서는 참 기가 차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2024년 4월에 선고되었던 서울고등법원 판결을 소개하려 합니다.
이 사건의 원고는 2021년 4월 9일 매도인인 피고 신탁사와 분양대금 830,181,000원에 타운하우스 한 호실을 분양받는 분양계약을 체결하고, 계약금과 중도금을 지급하였습니다. 원고가 받은 분양계약서에는 입주예정일이 '2022년 3월'이라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이 사건 타운하우스는 시행사가 2020년 11월 27일 피고 신탁사와
'신탁부동산의 소유권을 피고 신탁사에게 이전하고, 시행사가 책임지고 사업비를 조달하여 개발하며, 신탁사는 신탁부동산을 보존하고 관리하며 분양하여 처분하거나 임대한 다음 신탁계약에 정한 바에 따라 수익을 지급한다'는 내용으로
관리형토지신탁계약을 체결하였습니다.
이후 시행사는 2021년 10월 15일 시공사를 변경하고 이 사건 타운하우스의 신축공사를 맡기게 됩니다. 시공사 교체의 여파때문인지 2022년 10월 말일까지도 이 사건 타운하우스는 준공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당연히 원고도 이 사건 타운하우스에 입주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에 원고는 이 사건 소장을 통해 피고 신탁사에게 '이 사건 분양계약에서 정한 입주예정일(2022년 3월)로부터 3개월을 초과하여 입주가 지연되었음을 이유로 이 사건 분양계약을 해제한다'는 의사표시를 하였고, 이 사건 소장은 2022년 10월 21일 피고 신탁사에게 송달되었습니다.
이 사건에서는 피고인 신탁사는 여러가지 불가항력적 사유로 준공이 지연된 것이므로, 입주지연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기도 하였습니다.
원고를 비롯한 이 사건 타운하우스 수분양자들의 잦은 설계변경 요구와 그에 따른 도면 확정의 지연, 공사대금 증액, 자재비 폭등, 자금부족에 따른 리파이낸싱, 시공자 변경 등을 불가항력적 사유라고 주장한 것이죠.
하지만 법원은 "주택공급사업자가 입주지연이 불가항력이었음을 이유로 그로 인한 책임을 면하려면 입주지연의 원인이 그 사업자의 지배영역 밖에서 발생한 사건으로서 그 사업자가 통상의 수단을 다하였어도 이를 방지하는 것이 불가능하였음이 인정되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을 인용하며 신탁사의 불가항력 주장이 불가함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법원은 신탁사의 '책임한정특약' 주장에 대해 이렇게 판시하였습니다.
신탁사의 책임한정특약은 수분양자들이 분양계약의 체결 여부를 결정하는데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항이므로, 약관법상 설명의무의 대상이 되는 '중요한 내용'에 해당한다. 수분양자들은 분양계약을 해제하였을 경우, 신탁업 인가를 받은 자로서 충분한 자력을 가진 피고 신탁사가 원상회복 및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분양계약을 체결합니다. 그렇기에 시행사들도 신탁사에게 고액의 신탁보수를 주면서 신탁사를 내세우며 수분양자들에게 '관리형토지신탁' 현장이라고 홍보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정들을 생각해 보면, 신탁사가 '나 빠질래'라고 써 있는 책임한정특약은 신탁사가 수분양자들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하는 '중요한 내용'에 해당함이 당연합니다.
피고 신탁사가 원고에게 이 사건 책임한정특약을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설명하여 설명의무를 다하였다고 인정할 수 없다.
이 사건에서는, 분양계약서에 아래와 같은 내용이 있고, 원고가 '계약자 확인란'에 자필서명 한 사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아래와 같은 이유로 "피고 신탁사는 이 사건 책임한정특약에 대하여 약관법상의 설명의무를 위반하였으므로, 약관법 제3조에 따라 이 사건 책임한정특약을 이 사건 분양계약의 내용으로 삼을 수 없다. 결국 피고 신탁사의 책임한도 제한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결하였습니다.
① 이 사건 분양계약서는 4장으로 된 계약서에 20개의 조항이 매우 작은 글씨로 기재되어 있고, 이 사건 책임한정특약이 기재된 제20조는 총 11개의 항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피고 신탁사의 신탁채무자로서의 책임을 제한하는 이 사건 책임한정특약에 밑줄이나 굵은 글씨 처리 등을 하여 차별화 내지 강조하는 설명방법을 취하지 아니하여 다른 조항과 쉽게 구분하기 어려운 점,
② 이 사건 분양계약서의 계약자 확인란에는 단지 추상적․포괄적으로 이 사건 분양계약서의 관리형 토지신탁 유의사항(제20조)을 비롯한 모든 사항과 원고가 별도로 날인한 문서들의 내용 전부를 인지하고 있다는 내용만이 기재되어 있을 뿐이고, 위 계약자 확인란에 이 사건 책임한정특약의 구체적 내용이 명기되어 있지 아니한 점,
③ 피고 신탁사는 이 사건 분양계약 체결 당시 이 사건 책임한정특약 등을 설명하였다면서 분양팀 본부장의 사실확인서를 제출하였으나, 이에 따르더라도 이 사건 책임한정특약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오늘 말씀드린 2024년 서울고등법원 판결에서는 신탁사가 주장하는 '책임한정특약'이 무효이므로, 신탁사는 고유재산으로도 분양대금반환, 위약금지급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하지만 사실관계, 증거관계에 따라서 다른 결론이 날 가능성은 있습니다. 아직 대법원 판례로 정립된 부분이 아니다보니, 실제로 2023년 서울중앙지방법원 제1심 판결, 2024년 순천지원 제1심 판결에서는 유사한 사안에 대해 '책임한정특약'이 유효함을 인정하였습니다.
다음에는 본 글에서 소개한 판결과 정반대의 결론을 내린 판결문을 분석해 보려 합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